AI 시대, 마케터라는 존재에 대하여

AI 시대, 마케터라는 존재에 대하여

제임스 제임스 2026년 2월 9일 (수정됨: 2026년 2월 27일) 커리어 마케팅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직업이 탄생한 이래, 이토록 많은 도구가 마케터의 손에 쥐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동시에, 이토록 많은 마케터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의심한 적도 없었습니다.

McKinsey의 2025년 글로벌 AI 서베이에 따르면, 마케팅과 세일즈는 AI 도입으로 측정 가능한 ROI를 실현하는 상위 두 개 기업 기능입니다. 콘텐츠 최적화와 리드 전환에서 63%의 성과 향상이 보고되었습니다. 세계경제포럼의 2025 미래직업보고서는 2030년까지 전체 일자리의 22%가 구조적 변화를 겪을 것이라 예측합니다. 숫자는 냉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숫자들이 정말로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케터의 소멸일까요, 아니면 마케터라는 존재의 재정의일까요.

20년간의 경험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것은 이렇습니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사라진 것은 직업이 아니라, 직업의 피상적 정의에 안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동, 작업, 그리고 행위 사이에서

한나 아렌트는 1958년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활동을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생존을 위한 반복인 노동(labor), 지속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work),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행위(action). 아렌트가 가장 경계한 것은 자동화가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뒤, 정작 인간이 더 높은 차원의 활동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의 마케팅 현장이 정확히 그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AI는 마케팅의 노동 영역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습니다. 키워드 리서치, A/B 테스트 설계, 리포트 자동화, 심지어 카피라이팅까지. 이 영역들은 본질적으로 반복과 패턴의 세계이며, 기계가 인간보다 잘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작업과 행위의 영역입니다. 브랜드라는 지속적인 의미 체계를 설계하는 것, 시장이라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욕망을 감지하고 언어화하는 것. 이것은 패턴 인식이 아니라 의미 생성의 문제이며, 적어도 현재까지 기계가 도달하지 못한 영역입니다.

질문의 기술, 혹은 마케터의 존재론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경영에서 가장 중대한 실수는 잘못된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이 통찰은 AI 시대의 마케터에게 더욱 절실한 의미를 갖습니다.

AI는 답변에 최적화된 존재입니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그럴듯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왜 이 질문이 저 질문보다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여기에는 논리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가 작동합니다. 경험에서 축적된 직관, 시장의 미세한 온도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 소비자의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를 포착하는 눈.

실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습니다. “30대 직장인 타겟 광고 카피 써줘”라는 프롬프트와, “매일 아침 지하철에서 이직 사이트를 훑어보지만 정작 지원 버튼은 누르지 못하는 30대 중반 직장인의 머뭇거림에 말을 거는 카피”라는 프롬프트 사이에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관찰의 깊이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데모그래픽을 전달한 것이고, 후자는 인간을 이해한 것입니다.

맥락이라는 이름의 해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를 빠르고 직관적인 시스템 1과 느리고 분석적인 시스템 2로 구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이 두 시스템 모두를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대량의 데이터에서 패턴을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시스템 1의 모방이고, 복잡한 분석과 추론을 수행하는 것은 시스템 2의 모방입니다.

하지만 카너먼 자신이 강조했듯,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개인의 경험, 문화적 맥락, 감정적 상태라는 토양 위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판단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랜딩페이지의 이탈률이 40%에서 65%로 치솟았을 때, AI는 이 수치를 정확히 보고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경쟁사의 대규모 프로모션 때문인지, 업계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영향을 미친 것인지, 아니면 결제 시스템의 미세한 UX 변경이 심리적 저항을 만든 것인지를 판단하려면, 숫자 바깥의 세계를 읽어야 합니다. 이 맥락적 판단이야말로 20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것의 정체이며, 현재로서는 어떤 알고리즘도 학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보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습관, 정량 데이터와 고객의 목소리를 교차 검증하는 습관. 이런 것들이 데이터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을 가릅니다.

도구를 부리는 자와 도구에 부림을 당하는 자

McKinsey 보고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CMO의 50%가 생성형 AI 기반 마케팅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투자 영역 상위 3위 안에 꼽았지만, 2026년 우선순위 순위에서는 20개 항목 중 17위에 그쳤습니다. 1위는 브랜딩이었습니다.

어떤 역설이 있습니다. AI 도구가 넘쳐나는 시대에 기업의 리더들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의미입니다. 브랜드란 결국 고객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의미의 체계이며, 의미를 설계하는 일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무에서 이것은 개별 AI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여러 도구를 하나의 워크플로우로 엮는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리서치 단계에서 AI가 시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기획 단계에서 AI가 초안을 생성하고, 분석 단계에서 AI가 성과를 측정하더라도, 그 전체 과정을 관통하는 브랜드의 결, 메시지의 방향, 감정의 설계는 마케터의 판단 영역에 남습니다.

각 단계에서 AI가 실행을 담당하고, 마케터가 판단을 담당하는 구조. 이것이 지금 가장 현실적인 협업 모델입니다. AI가 만들어낸 열 개의 카피 중 어떤 것이 우리 브랜드의 결에 맞는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마케터입니다.

깊이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깊이의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케팅의 전 영역을 넓게 이해하되, 한 가지 분야에서는 AI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깊이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른바 T자형 역량 구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깊이를 선택할 때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AI가 아직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AI가 못하는 영역은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따라잡힙니다. 대신 “AI와 함께할 때 시너지가 극대화되는 것”을 고르십시오. 브랜드 내러티브 설계, 커뮤니티 빌딩, 데이터 사이언스와 마케팅의 교차점 같은 영역들이 그렇습니다.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여러분의 가치가 높아지는 영역.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미래 대비입니다.

불안은 답이 아니지만, 질문은 될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오길비는 한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고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소비자의 무관심이라고. 그 말을 지금에 맞게 고쳐 쓴다면, 마케터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성일 것입니다.

인쇄기가 필경사를 대체했을 때 사라진 것은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글을 베끼는 행위였습니다. 디지털 광고가 전통 매체를 잠식했을 때 사라진 것은 마케터가 아니라 매체에만 의존하던 중개자였습니다. 패턴은 반복됩니다. 그리고 그 패턴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수단에 머무르는 존재이고, 남는 것은 목적을 묻는 존재입니다.

AI 시대에 마케터로 살아남는 것은, 결국 마케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기만의 답을 가지는 것과 같은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아마도,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해석자에 가까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 시장에 대한 감각, 소비자에 대한 이해. 그것들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증명하는 일을 커리어노트와 함께 시작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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