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덕트 매니저(PM)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통적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제 생성형 AI가 PRD(제품 요구사항 문서)도 써주고, 유저 리서치 데이터도 요약해주는데, 앞으로 우리 기획자의 역할은 무엇이 될까요?”라는 불안 섞인 질문입니다. 12년 동안 프로덕트의 성장을 지켜봐 온 저 역시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I가 도구가 되는 시대에 PM의 역할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본질적이고 전략적인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 정의
기존의 PM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소통을 위한 ‘문서화’와 ‘운력’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요구사항을 정리하고, 티켓을 생성하고,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등 실행(Execution)의 영역이 큰 비중을 차지했죠. 하지만 LLM(거대언어모델)의 발전은 이 영역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제 누구나 적절한 프롬프트만으로 정교한 기획안 초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AI가 나를 대체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결과물 중 무엇이 우리 사용자에게 진짜 가치를 주는가”를 판단하고 설계하는 능력이 결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기능 나열식 기획(Feature-led)에서 벗어나지 못한 PM은 AI 시대에 길을 잃기 쉽습니다. 결정의 근거가 데이터인지, 아니면 모델의 환각(Hallucination)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은 프로덕트 전체의 리스크로 이어집니다.
프레임워크: AI 시대의 PM 역량 삼각형
AI 시대에 PM이 가져야 할 새로운 역량 모델을 세 가지 축으로 정의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AI PM 역량 삼각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첫 번째 축은 확률적 사고(Probabilistic Thinking)입니다. 기존의 소프트웨어 기획이 “A를 클릭하면 B가 나온다”는 결정론적(Deterministic) 구조였다면, AI 제품은 “A를 입력하면 모델이 확률적으로 최선의 결과 B를 생성한다”는 구조입니다. PM은 이제 완벽한 정답이 아닌, 결과의 허용 범위를 설계하고 제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 축은 데이터 가치 설계(Data Value Design)입니다. AI의 성능은 결국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학습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서비스만이 가질 수 있는 독점적인 데이터가 무엇인지 식별하고, 이를 모델과 연결하여 경쟁 우위를 만드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AI 기능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플라이휠(Data Flywheel)을 설계하는 능력이 핵심입니다.
세 번째 축은 맥락적 공감(Contextual Empathy)입니다. AI는 정보는 잘 요약하지만, 사용자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과 맥락은 읽어내지 못합니다. “사용자가 왜 이 시점에 이 기능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은 여전히 인간 기획자의 고유 영역입니다. AI가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불편함’을 포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사례 분석: 맥락 속으로 들어간 AI, 노션(Notion)
AI를 프로덕트에 가장 영리하게 이식한 사례로 노션(Notion)을 꼽고 싶습니다. 노션은 단순히 챗봇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글을 쓰는 모든 맥락에 AI를 녹여냈습니다. 텍스트를 드래그하면 요약, 번역, 톤 변경 제안이 나타납니다.
노션의 기획자들은 AI 기술 자체를 과시하기보다, 사용자의 워크플로우(Workflow)를 방해하지 않는 지점을 정확히 찾아냈습니다. 이는 마티 케이건(Marty Cagan)이 강조하는 프로덕트 디스커버리의 전형입니다.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Feasibility)가 아니라, 사용자가 실제로 이 가치를 위해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Value)에 집중한 결과입니다.
만약 노션이 단순한 별도의 AI 채팅창만 만들었다면, 사용자는 컨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번거로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션은 사용자의 ‘글쓰기’라는 맥락 안에서 AI가 조력자가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기획자가 해야 할 ‘프로덕트 아키텍처’ 설계입니다.
실무 적용: PM을 위한 AI 리터러시 훈련
그렇다면 PM 여러분은 지금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제가 실무에서 적용하고 있는 세 가지 팁을 공유합니다.
먼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넘어 모델의 한계를 직접 경험해보세요. 단순히 질문을 잘 던지는 법이 아니라, 특정 모델이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 데이터 구조에서 가장 정확한지 파악해야 합니다. 직접 API를 호출해보고 파라미터를 조정해보며 모델의 성격을 파악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합니다.
둘째, 정성적 데이터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세요. AI가 정량적 데이터 요약은 잘하지만, 인터뷰에서 사용자의 떨리는 목소리나 망설임은 잡아내지 못합니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사용자를 직접 만나 ‘왜’라는 질문을 던지세요. AI가 제공하는 요약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셋째, 결과물 중심(Outcome-oriented) 지표를 재정의하세요. 단순히 “AI 기능을 얼마나 썼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AI 덕분에 사용자의 작업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는가” 혹은 “AI 제안 중 실제 채택된 비율은 얼마인가”와 같이 실질적인 사용자 임팩트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설계해야 합니다.
결론
AI는 기획자의 적이 아니라, 우리를 지루한 문서 작업에서 해방시켜줄 가장 강력한 우군입니다. 도구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역할의 진화를 불러옵니다. 과거의 PM이 ‘무엇을 만들지 정의하는 사람’이었다면, 미래의 PM은 ‘문제가 해결되는 최적의 구조를 설계하는 아키텍트’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좋은 프로덕트란 기술의 화려함이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얼마나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도처에 깔린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욱 인간의 마음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프로덕트에서 AI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진정한 사용자 가치로 이어지는 지점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참고 자료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제이펍)
- 테레사 토레스, 『Continuous Discovery Habits』 (Product Talk LLC)
- Lenny’s Newsletter, “How to build AI products” (2023)
- Harvard Business Review, “AI-First Strateg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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