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역설이 하나 있습니다. 매출은 분명히 늘고 있는데, 대시보드는 그 매출을 가리키지 못합니다. 어떤 채널은 전환 수가 0으로 찍히는데 정작 그 채널을 통해 물건이 팔립니다. 마케터에게 측정되지 않는 매출만큼 불안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2026년의 커머스는 바로 그 불안 위에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상품을 고르고 결제 버튼을 누르는 시대, 우리가 20년간 믿어온 추적 체계가 조용히 무력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시보드가 0을 가리키는 시대
오픈AI는 2025년 9월 ChatGPT 안에서 곧바로 결제가 일어나는 인스턴트 체크아웃을 선보였고, 스트라이프와 함께 이를 떠받치는 개방형 표준인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ACP”)을 공개했습니다. 2026년 들어 이 흐름은 더 빨라졌습니다. 구글은 4월 자사의 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AP2”)을 FIDO 얼라이언스에 기부하며 산업 표준으로 끌어올렸고, 오픈AI는 단순 체크아웃을 넘어 월마트, 타깃, 인스타카트, 익스피디아 같은 리테일러가 직접 운영하는 ChatGPT 앱 생태계로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규모는 추정치마다 다르지만 방향은 일치합니다. 맥킨지는 에이전트 기반 커머스가 2030년까지 3조에서 5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고, 쇼피파이는 자사 가맹점에서 AI로 귀속된 주문이 2025년 1월부터 2026년 3월 사이 약 11배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 성장의 상당 부분이 마케터의 분석 화면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추적 코드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왜 보이지 않을까요. 우리의 측정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답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전환 추적은 사람이 브라우저로 사이트를 방문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페이지가 열리면 자바스크립트 태그가 실행되고, 쿠키가 심기고, 결제 완료 페이지(“thank-you page”)가 로드되는 순간 전환 1건이 기록됩니다. 광고 클릭부터 구매까지의 경로는 이 신호들의 연쇄로 재구성됩니다.
에이전트는 이 연쇄를 통째로 건너뜁니다. AI가 상품을 추천하고 구매할 때, 거래는 브라우저 세션이 아니라 백엔드 간 API 호출로 처리됩니다. 자바스크립트는 실행되지 않고, 쿠키는 심기지 않으며, 완료 페이지는 열리지 않습니다. 클라이언트 사이드에 의존하는 모든 추적 도구가 이 거래에 대해 눈을 감는 셈입니다. 설령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사이트로 보내더라도, 다수의 AI 도구는 출처를 알려주는 리퍼러 정보를 넘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 방문들은 분석 도구에서 정체불명의 다이렉트 트래픽으로 뭉뚱그려집니다. 검색의 시대에 우리를 괴롭히던 다크 소셜이, 이제 커머스의 영역에서 훨씬 큰 규모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업계에서도 이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지금은 에이전트를 통해 팔 수는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측정할 수는 없다.” 신뢰할 만한 귀속 체계가 자리잡기까지 18개월에서 24개월, 즉 빨라야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는 되어야 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측정할 수 없으면 없는 일이 되는가
여기서 마케터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측정되지 않는 채널을 존재하지 않는 채널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대시보드에 0으로 찍히니 성과가 없다고 판단하고, 예산을 측정 가능한 채널로 옮깁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결정이 사실은 가장 위험합니다.
사회과학자들은 이 오류에 이름을 붙여두었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전쟁의 성패를 적군 사망자 수라는 측정 가능한 숫자로 환산해 관리했고, 그 과정에서 적의 사기나 정치적 의지처럼 셀 수 없는 결정적 변수를 시야에서 놓쳤습니다. 여기서 맥나마라의 오류라는 개념이 나왔습니다. 사회학자 대니얼 얀켈로비치는 이 함정을 네 단계로 정리했는데, 마지막 단계가 섬뜩합니다.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재고, 측정하기 어려운 것은 무시하다가, 끝내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버리는 것. 경영사상가 찰스 핸디는 이를 두고 “이것은 자살 행위”라고까지 적었습니다.
마케팅에는 비슷한 격언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을 측정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만든다. 에이전트 커머스 앞에서 이 경고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측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 채널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매출원을 스스로 0으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대시보드라는 지도가 실제 영토를 잃어버린 채 그 자체로 현실 행세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마케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행히 “측정 불가능”은 처음 겪는 벽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 가전 브랜드의 오픈마켓 채널 퍼포먼스 마케팅을 맡았던 시절, 저는 똑같은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오픈마켓은 구매 전환 데이터를 광고주에게 되돌려주지 않았고, 클릭 이후의 여정은 완전히 캄캄했습니다. 그때의 해법은 클라이언트 사이드 추적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리테일 미디어와 리테일 데이터 기반의 다른 신호 체계로 갈아타는 것이었습니다. 협력 광고와 다이내믹 애즈 구조를 새로 짜고, 매체별 증분 효과를 따로 검증하면서 비로소 캄캄하던 채널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의 에이전트 커머스도 본질은 같습니다. 측정의 무대가 내 사이트에서 플랫폼과 피드로 옮겨갔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네 가지를 권합니다.
| 영역 | 과거 방식 | 에이전트 시대의 전환 |
|---|---|---|
| 측정 | 클라이언트 사이드 픽셀 | 서버 사이드 추적, 증분성 실험 |
| 가시성 | 검색 순위(SEO) | AI 인용·추천 노출(AEO) |
| 데이터 | 광고 플랫폼 리포트 | 상품 피드 정합성, 리테일 데이터 |
| 판단 | 채널별 라스트클릭 | 홀드아웃 기반 기여도 추정 |
첫째, 상품 피드를 에이전트가 읽는 언어로 정비해야 합니다. 에이전트는 배너가 아니라 구조화된 피드를 보고 판단합니다. 제목, 설명, 가격, 재고, 정확한 속성값이 곧 노출의 조건입니다. 둘째, 증분성 실험으로 측정을 대체합니다. 라스트클릭이 무력화된 자리에서는, 특정 지역이나 세그먼트를 일부러 광고에서 제외하는 홀드아웃 테스트로 “이 채널이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매출”을 역산하는 편이 정직합니다. 셋째, 브랜드 언급량 자체를 선행지표로 관리합니다. 에이전트가 무엇을 추천할지는 학습·참조한 데이터에 달려 있으므로, 신뢰할 만한 매체와 커뮤니티에서의 언급이 곧 추천 확률입니다. 넷째, 서버 사이드 데이터로 측정의 무게중심을 옮깁니다. 브라우저가 사라진 거래는 결국 서버 로그와 결제·주문 데이터에서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전망
에이전트 커머스의 측정 체계는 2027년을 전후로 성숙할 것입니다. 표준 프로토콜이 자리잡고, 플랫폼이 기여 데이터를 일부 개방하며, 서버 사이드 귀속이 보편화되면 지금의 캄캄함은 상당 부분 걷힐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변화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설득해야 할 대상이 사람에서 사람을 대리하는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성적인 카피와 화려한 배너가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와 구조화된 정보가 구매를 결정하는 비중이 커집니다. 마케팅의 문법 자체가 다시 쓰이는 중입니다.
결론
데이터는 나침반이지 영토가 아닙니다.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어떤 채널을 없는 셈 친다면, 우리는 나침반을 보느라 정작 가야 할 땅을 잃는 것입니다. 20년을 돌아보면, 측정의 사각지대는 늘 있었고 그 사각지대를 먼저 들여다본 마케터가 다음 시장을 가져갔습니다. 에이전트가 산 매출은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여러분의 대시보드가 0을 가리킬 때, 그 0을 의심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가요?
참고 자료
- OpenAI, “Buy it in ChatGPT: Instant Checkout and the Agentic Commerce Protocol” (2025)
- Stripe, “Developing an open standard for agentic commerce” (2025)
- Shopify, “Agentic Commerce: Benefits & How To Get Started” (2026) — AI 귀속 주문 약 11배 증가 데이터
- McKinsey & Company, 에이전트 기반 커머스 시장 규모 추정 (2030년 3~5조 달러)
- Daniel Yankelovich, “Corporate Priorities: A continuing study of the new demands on business” (1972) — 맥나마라 오류의 4단계
- Charles Handy, 『The Empty Raincoat』 (1994)
- Jean Baudrillard,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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