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동료 HR 리더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본사에서 내려온 정리해고 안내문 초안을 함께 살펴봐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문장은 정중했고 감정도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별 사유를 설명하는 단락 한가운데에 낯선 단어가 한 줄 들어가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반복 업무 축소.” 저는 그 한 줄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해온 십수 년 동안, 해고 통지서에 ‘AI’라는 단어가 사유로 적힌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통지서의 어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사람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의 정의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통지서에 ‘AI’가 적히기 시작했다
지난 4월 15일, Snap은 전체 인력의 16%인 약 1,000명의 감원을 발표했습니다. CEO 에반 슈피겔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이 우리 팀이 반복 업무를 줄이고, 속도를 높이고, 커뮤니티를 더 잘 지원할 수 있게 한다.” 같은 주에 발표된 Challenger, Gray & Christmas의 1분기 보고서는 더 분명한 그림을 보여줍니다. 미국 전체 산업에서 3월 한 달 동안 발표된 인력 감원은 약 6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1만 5천 명, 즉 25%가 ‘AI’를 직접적인 사유로 명시했습니다. 3월부터 AI는 모든 해고 사유 중 1위에 올랐습니다. 2026년 1분기 미국 테크 산업의 누적 감원은 약 5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이 흐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Salesforce의 마크 베니오프 CEO는 “AI를 해고의 이유로 드는 것은 게으른 변명”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했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어차피 진행할 결정이었는데, AI라는 시대 정신이 정당화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입니다. 양쪽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맞든,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이별의 언어에 AI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 그리고 그 사실은 HR이 다뤄야 할 책임의 범위를 다시 정의합니다.
자동화인가, 보완인가
MIT의 노동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는 AI를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자동화 도구(automation tool)와 협업 도구(collaboration tool)입니다. 자동화 도구는 전문성을 제거합니다. 사람의 판단 없이 결과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 그 일을 하던 사람의 자리를 비웁니다. 반면 협업 도구는 전문성의 증폭기입니다. 더 적은 경험으로도 더 큰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일을 하던 사람의 영향력을 키웁니다. 오토 교수는 같은 기술이라도 어떻게 설계되고 도입되느냐에 따라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AI가 일자리를 줄일지 키울지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보고서 『Future of Jobs』는 이 선택의 무게를 정량적으로 보여줍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9,2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 7천만 개가 새로 생겨, 순증은 약 7,800만 개에 이릅니다. 숫자만 보면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곧바로 단서를 답니다. 이 교환은 같은 사람, 같은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직무가 사라지고 그 사람이 새로운 직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직무가 사라지고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사람의 직무가 생깁니다. 같은 보고서는 직장인이 보유한 스킬셋의 39%가 2030년까지 노후화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41%의 고용주가 AI로 인한 인력 감축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통지서에 AI가 적히는 흐름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시작점입니다.
한 그룹사의 전직지원 프로그램에서 본 것
몇 해 전, 한 그룹사의 퇴직예정자 전직지원 프로그램을 설계했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사업 재편으로 수백 명의 인력 조정이 결정된 시점이었고, 저희 팀에게 주어진 임무는 떠나는 분들의 재취업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력서 작성법, 면접 코칭, 채용 설명회 같은 것을 정성스럽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떠나는 분들의 가장 큰 불안은 다음 직장을 찾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경험이 아직 어딘가에서 의미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프로그램의 무게중심을 바꿔놓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시간을 쏟은 것은 채용처 발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직무 경험을 task 단위로 분해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분이 해온 업무를 잘게 쪼개고, 각 task가 다른 산업과 직무에서 어떻게 재조합될 수 있는지를 함께 그렸습니다.
그 작업을 하면서 한 가지가 더 보였습니다. 떠나는 사람의 직무를 분해하는 일은 곧 남는 사람의 직무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한 직무가 사라지면, 같은 조직에 남은 동료들의 직무 경계도 함께 흔들립니다. 누가 그 task를 받을 것인지, 어떤 task는 자동화하고 어떤 task는 사람에게 남길 것인지가 함께 결정되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HR의 책임은 떠나는 사람을 정중하게 보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는 직무를 정중하게 다시 짜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HR이 짊어지는 두 트랙
지금 통지서에 AI가 적히는 시대에, HR은 동시에 두 개의 트랙을 운영해야 합니다.
첫 번째 트랙은 떠나는 분들을 보내는 방식입니다. 전직지원의 핵심은 채용처 알선이 아니라 경험의 재해석입니다. 한 분의 직무를 task 단위로 분해하고, 각 task가 다른 산업·다른 직무에서 어떻게 재조합될 수 있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작업이 그 시작입니다. 출구 인터뷰는 형식적인 만족도 조사가 아니라, 떠나는 분의 관점에서 조직의 직무 설계를 점검할 수 있는 마지막 진단의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알럼나이 네트워크는 단절된 관계의 종착지가 아니라, 미래의 협업 자산으로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 트랙은 남는 직무를 다시 짜는 일입니다. 이 지점에서 오토 교수의 구분이 실무로 내려옵니다. 새로 도입하는 AI를 자동화 도구로 위치시킬 것인가, 협업 도구로 위치시킬 것인가는 도입 단계에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직무 자체를 자동화하려 하면 사람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직무를 task로 분해한 뒤 그 가운데 일부 task를 AI에 위임하면, 사람의 영향력은 오히려 확장됩니다. HR은 더 이상 “AI를 잘 쓰는 교육”을 운영하는 역할에 머물 수 없습니다. 직무 단위 자체를 다시 그리고, 어떤 task를 사람에게 남길지 결정하는 거버넌스의 자리에 함께 앉아야 합니다.
세일즈포스가 사내에 ‘Reinvention Hub’를 두고 직원의 직무 재설계를 지원한다는 사례는 이 두 번째 트랙이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모델입니다. 비록 그 안에서도 일부 직무는 결국 정리되었지만, 적어도 “남는 사람의 직무가 무엇으로 바뀌는가”라는 질문에 회사가 책임지고 답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결론
해고 통지서에 ‘AI’가 적히는 일은 단순한 사유서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직무 정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어떤 일은 사라지고, 어떤 일은 새로 태어나며, 그 사이에서 사람의 자리는 다시 그려집니다. HR은 이제 채용·평가·해고를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라, 사람이 할 일을 정의하는 부서라는 새 정체성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습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조직은 단기적인 효율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를 잃습니다.
조직문화는 정원과 같아서, 떠난 자리에 무엇을 심을지 정하는 손이 곧 그 정원의 다음 계절을 결정합니다. 통지서의 한 줄에 AI가 적히는 지금, HR이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것은 떠나는 분들의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남는 분들의 다음 직무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입니다.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방향이 사람을 향해 있다면.
참고 자료
- Snap Inc., “CEO Evan Spiegel’s memo on workforce reduction”, April 15, 2026 (TechCrunch, CNBC 보도)
- Challenger, Gray & Christmas, “March 2026 Job Cut Report — AI Leads Reasons”, April 2026
- World Economic Forum, “Future of Jobs Report 2025”, January 2025
- David H. Autor, “Applying AI to Rebuild Middle Class Jobs”, MIT Stone Center on Inequality, 2024
- Marc Benioff Interview, “AI as ‘lazy way out’ for layoffs”, BusinessToday, April 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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