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의 학력란이 의미 없어지고 있다

이력서의 학력란이 의미 없어지고 있다

면접장에서 한 지원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력서에 적힌 학력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포트폴리오에 담긴 프로젝트 경험과 문제 해결 과정은 어떤 명문대 출신보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지원자가 합류한 팀의 변화였습니다. 기존 팀원들과의 협업에서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팀 전체의 성과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두 가지 질문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정말 ‘역량’을 보고 뽑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조직’이 아니라 ‘팀’에 맞는지를 확인하고 있는가?

학력이라는 오래된 렌즈를 내려놓을 때

오랫동안 채용의 첫 번째 관문은 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은 다릅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버닝글래스 연구소의 2024년 공동 연구에 따르면, 학력 요건을 제거한 채용 공고는 지원자 풀이 58% 증가했고, 포지션 충원 속도는 37% 빨라졌습니다. 더 주목할 점은 이렇게 채용된 인재들의 성과 평가가 25% 높았고, 이직률은 40% 낮았다는 것입니다.

맥킨지의 분석은 더 직접적입니다. 스킬 기반 채용이 학력 기반 채용보다 직무 성과 예측력에서 5배 높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링크드인의 2026년 보고서에서도 전체 채용 공고의 약 45%가 학위보다 스킬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시장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내 상위 500대 기업의 86.7%가 이미 HR 프로세스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스킬 매칭 기반의 채용 플랫폼 이용률은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포인트는, 학력 요건을 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연구에서 학력 요건을 제거했다고 선언한 기업 중 실제로 채용 관행이 바뀐 경우는 700건 중 1건에 불과했습니다. 선언과 실행 사이의 간극, 이것이 우리가 진짜 마주해야 할 과제입니다.

컬처핏에서 팀핏으로: ‘적합성’의 재정의

스킬 기반 채용이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답이라면, 팀핏은 ‘어디에 맞춰볼 것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조직심리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구분을 논의해왔습니다.

에드가 샤인은 조직문화가 단일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문화는 조직 전체 수준이 아니라 팀과 부서 단위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합니다. 같은 회사 안에서도 개발팀의 문화와 마케팅팀의 문화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채용 면접에서 ‘우리 회사 문화에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기준일 수 있습니다.

Kristof-Brown 등의 2005년 메타분석 연구는 적합성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기존 팀원과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보충적 적합(supplementary fit)과, 팀에 부족한 역량을 채워주는 보완적 적합(complementary fit)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보충적 적합은 사회적 유대감과 안정성을 높이고, 보완적 적합은 혁신과 문제 해결력을 강화합니다.

여기에 철학적 시사점을 더하자면, 마사 누스바움의 역량 접근법이 떠오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잠재태(dynamis)와 현실태(energeia) 개념에 뿌리를 둔 이 관점은, 사람을 과거에 달성한 것이 아니라 적절한 환경이 주어졌을 때 발현할 수 있는 잠재력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학위는 과거의 현실태를 증명할 뿐이지만, 스킬 평가와 팀핏 확인은 미래의 잠재태를 가늠하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팀핏의 힘

몇 년 전, 신규 사업 조직을 세팅하면서 채용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존 방식대로라면 경력 연차와 이전 회사의 네임밸류를 기준으로 서류를 걸러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먼저 팀이 현재 가지고 있는 역량을 맵핑하고, 부족한 영역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뒤, 그 갭을 메울 수 있는 스킬셋을 채용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면접에서는 지원자가 기존 팀원들과 실제로 협업하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팀은 6개월 만에 목표 대비 초과 성과를 냈고, 초기 이탈률도 거의 없었습니다.

반대 경험도 있습니다. 성과관리 체계를 새로 설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조직 진단과 직무 분석을 먼저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발견한 것은 기존 평가 기준이 ‘개인의 스펙’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팀 단위의 성과 기여도, 협업 과정에서의 역할, 동료에게 미치는 영향력 같은 요소는 평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평가 기준을 바꾸니 채용 기준도 자연스럽게 바뀌었습니다.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팀을 더 잘하게 만드는 사람’을 찾게 된 것입니다.

에이미 에드먼슨의 연구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구글의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혀낸 것처럼, 팀 효과성의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감이었습니다. 보완적 적합을 갖춘 다양한 구성원이 실제로 기여하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팀핏은 단순히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를 더 성장하게 만드는 조합’을 의미합니다.

팀핏을 평가하는 실무적 접근

원티드랩의 채용 트렌드 2026 보고서는 ‘팀핏’을 올해의 핵심 키워드로 선정하며, 팀 기반 시뮬레이션 면접의 확산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팀핏을 평가하기 위해 제가 권하는 접근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팀 역량 맵핑을 먼저 하십시오. 채용 공고를 쓰기 전에, 현재 팀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솔직하게 진단해야 합니다. 기술 스킬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의사결정 방식, 갈등 해결 패턴까지 포함합니다.

둘째, 면접에 팀을 참여시키십시오. 팀 리더만의 판단이 아니라, 실제 함께 일할 동료들이 면접에 참여하여 협업 시뮬레이션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보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의견 충돌 상황에서 어떻게 소통하는지,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발전시키는지를 관찰합니다.

셋째, 보충적 적합과 보완적 적합의 균형을 설계하십시오. 팀의 안정성이 필요한 시기라면 보충적 적합에 무게를 두고, 혁신과 돌파가 필요한 시기라면 보완적 적합을 우선합니다. 이것은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팀의 현재 상태에 따라 유동적으로 조정하는 것입니다.

넷째, 온보딩을 팀핏 형성의 연장선으로 설계하십시오. 채용은 시작일 뿐입니다. 새로운 구성원이 팀에 안전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첫 90일 동안의 관계 형성 프로세스를 구조화해야 합니다.

씨앗에서 뿌리까지

돌이켜보면, 채용의 본질은 결국 ‘이 사람이 여기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학력은 씨앗의 포장지를 보는 일이고, 스킬 평가는 씨앗의 품질을 확인하는 일이며, 팀핏 확인은 이 씨앗이 이 토양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입니다.

완벽한 채용은 없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맞다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학력 칸을 지우는 것에서 시작해, 스킬을 정의하고, 팀의 맥락 안에서 적합성을 살펴보는 것.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다음 채용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이 팀을 더 좋게 만드는 사람’을 찾는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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