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결심하고 오퍼 레터를 받는 순간, 많은 분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얼마를 불러야 적당할까. 그런데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직 연봉 협상의 승패는 협상 테이블에서 숫자를 얼마나 잘 부르느냐가 아니라, 테이블에 앉기 전에 무엇을 정해두었느냐에서 갈립니다.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은 어디인지, 내가 요구하는 숫자의 근거는 무엇인지. 이 두 가지를 정하지 않은 채 들어가면, 협상은 대개 상대가 먼저 부른 숫자에 반응만 하다 끝납니다. 오늘은 그 준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직 연봉 협상, 왜 대부분 만족하지 못하고 끝날까
먼저 현실을 보겠습니다. 인크루트가 직장인 1305명에게 물은 조사에서, 연봉 협상을 실제로 해본 사람은 40.7%였습니다. 그런데 협상을 한 사람들 중 58.9%가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다섯 명 중 세 명꼴입니다. 더 무거운 숫자도 있습니다. 협상 뒤에 퇴사 충동을 느꼈다는 응답이 52.9%였고, 그중 92.5%는 연봉을 이유로 다시 이직을 시도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포인트가 있습니다. 이 불만족은 대부분 회사가 돈을 적게 줘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같은 조사에서 협상을 통해 연봉이 오른 사람은 61.4%, 평균 인상률은 7.5%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절반 넘게 후회하는 이유는, 준비 없이 들어가 스스로 납득할 근거를 만들지 못한 채 끝냈기 때문입니다. 오른 것 같긴 한데 이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는 상태. 그 찜찜함이 협상 이후까지 남아, 결국 다음 이직을 앞당깁니다.
협상의 힘은 배짱이 아니라 대안에서 나온다
많은 분이 연봉 협상을 담력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간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죠. 하지만 협상 연구가 말하는 바는 다릅니다. 협상력의 진짜 원천은 대안입니다.
로저 피셔와 윌리엄 유리는 하버드 협상 연구의 고전 『Getting to Yes』에서 이것을 BATNA라고 불렀습니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남는 선택지, 다른 곳에서 받은 또 하나의 오퍼, 혹은 몇 달을 더 기다릴 수 있는 여유. 이 대안이 분명한 사람은 상대의 제안이 이 선을 넘는지 아닌지로 판단하면 됩니다. 대안이 없는 사람만이 상대가 부른 숫자에 끌려다닙니다. 배짱처럼 보이는 것의 실체는, 사실 잘 정리된 대안입니다.
또 하나 알아둘 것이 앵커링입니다. 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와 토마스 무스바일러의 협상 실험을 보면, 먼저 제시된 숫자가 최종 합의가를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한 실험에서 첫 제안과 최종 타결가의 상관관계는 0.85에 달했습니다. 먼저 부른 숫자가 닻이 되어 이후의 모든 대화를 그 근처로 묶어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연구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상대의 앵커에 휘둘리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미리 정해둔 목표와 대안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준비된 기준선이 있으면 남의 닻이 나를 흔들지 못합니다.
숫자보다 먼저 정해야 할 세 가지
그러면 테이블에 앉기 전에 무엇을 정해두어야 할까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을 정합니다. 희망 연봉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숫자를 준비하세요. 이상적인 금액, 무난한 합의점, 그리고 이 밑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최저선입니다. 이 최저선은 감정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안에서 나와야 합니다. 지금 회사에 남는 것보다 나은가, 다른 대안보다 나은가로 정하는 것입니다. 이 선이 있어야 협상 도중 흔들리지 않습니다.
둘째, 숫자의 근거를 성과의 언어로 준비합니다. 생활비가 올라서, 이 정도는 받아야 해서는 근거가 아닙니다. 회사가 납득하는 근거는 내가 지난 자리에서 만든 변화입니다. 이것은 경력기술서를 업무 나열이 아니라 성과의 증거로 쓰는 일과 정확히 같은 작업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바꿨는지를 한두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요구하는 숫자에 무게가 실립니다.
셋째, 연봉이 아니라 총보상으로 봅니다. 기본급만 보면 협상은 한 숫자를 놓고 벌이는 줄다리기가 됩니다. 하지만 사이닝 보너스, 성과급 조건, 스톡옵션, 직급, 연봉 재검토 시점처럼 조정 가능한 항목은 여럿입니다. 기본급이 막혔을 때 다른 카드로 옮겨갈 수 있으면, 협상은 훨씬 유연해집니다.
세 가지를 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준비 항목 | 준비 없이 들어갈 때 | 미리 정하고 들어갈 때 |
|---|---|---|
| 최저선 | 상대 숫자를 보고 즉흥 판단 | 대안을 기준으로 미리 확정 |
| 근거 | 이 정도는 받아야 한다는 정서 | 지난 자리에서 만든 성과 |
| 범위 | 기본급 하나에 매달림 | 총보상의 여러 항목으로 분산 |
채용하는 쪽에 앉아보면 보이는 것
불편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예전에 인사 파트너로 오퍼 레터의 숫자를 안쪽에서 설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확인한 것은, 회사가 후보에게 처음부터 줄 수 있는 최대치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부분 직급별로 연봉 밴드가 있고, 첫 제안은 그 밴드의 중간이나 하단에서 시작합니다.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죠. 그래서 후보가 근거를 갖춰 조정을 요청하면, 상당수는 밴드 안에서 올려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앞의 인크루트 조사에서도 조정을 신청한 사람의 48%가 인상을 받아냈습니다. 묻지 않으면 그 여지는 그냥 회사에 남습니다. 채용하는 쪽이 후보를 어떻게 읽는지는 역량 중심 채용이 지원자를 평가하는 방식을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반대편의 장면도 기억납니다. 한때 퇴직을 앞둔 분들의 재취업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본 후회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때 한 번 더 물어볼걸. 좋은 경력을 가진 분들이 처음 받은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몇 달 뒤 시장 가격을 알고 나서야 아쉬워했습니다. 협상은 무례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회사는 근거를 갖춘 요청을 대개 준비된 태도로 읽습니다. 물어보지 않아서 잃는 것이, 물어봐서 잃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협상 이후의 찜찜함이 입사 초기의 조기 이탈로 이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한 번의 대화는 회사에도 남는 문제입니다.
결론
이 마지막 대목이 왜 중요한지는 카네기멜런의 경제학자 린다 뱁콕의 연구가 말해줍니다. 뱁콕은 첫 연봉을 협상하지 않고 받아들이면 이후의 인상과 성과급이 모두 그 낮은 기준 위에서 계산되기 때문에, 평생 수십만 달러의 차이로 벌어진다고 지적합니다. 시작 숫자 하나가 복리로 따라붙는 것입니다. 이직 연봉 협상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한 번이 다음 이직의 출발선을 정하고, 그 출발선이 다시 다음 자리의 보상과 평가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오퍼를 받으면 숫자부터 고민하지 마세요. 먼저 내가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을 정하고, 내 성과를 근거의 언어로 다듬고, 볼 수 있는 카드를 총보상으로 넓히세요. 준비가 끝나면 협상은 담력 시험이 아니라 정리된 대화가 됩니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한 번 더 묻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참고 자료
- Roger Fisher & William Ury, 『Getting to Yes: Negotiating Agreement Without Giving In』 (1981) — BATNA와 유보가격 개념, 하버드 협상 프로젝트
- Adam D. Galinsky & Thomas Mussweiler, “First Offers as Anchors: The Role of Perspective-Taking and Negotiator Focu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01) — 첫 제안 앵커링, 첫 제안과 최종 타결가 상관 0.85
- Linda Babcock & Sara Laschever, 『Women Don’t Ask』 (2003); 『Ask for It』 (2008) — 첫 연봉 미협상의 복리 손실
- 인크루트, “직장인 연봉 협상 경험 설문” (직장인 1305명) — 협상 경험 40.7%, 결과 불만족 58.9%, 조정 신청 후 인상 48.0% / 한경비즈니스 보도(2026.3)